문화가 흐르는 한자 <동아일보>에서
모음 鄭 錫 元 교수
03/12/28 <659>螳 螂 拒 轍(당랑거철) △
螳-사마귀 당 螂-사마귀 랑 轍-수레바퀴 철 喩-깨우칠 유 微-작을 미 斧-도끼 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제 힘은 料量(요량)하지 않고 無謀(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을 比喩(비유)한 말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螳螂은 우리말로 ‘사마귀’, 또는 ‘오줌싸개’다. 생김새가 메뚜기와 비슷하나 좀 더 길고, 톱날 같이 생긴 기다란 두 다리로 메뚜기나 여타 곤충 따위를 잡아먹는다. 먹이가 있으면 슬슬 기어가 두 다리를 뻗은 채 한참 동안 응시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덮쳐 잡는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때의 이야기다. 한번은 齊(제)의 莊公(장공)이 사냥을 나갔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두 앞다리를 번쩍 들고는 수레바퀴를 막는 것이 아닌가. 莊公은 우습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여 주위 신하에게 물었다.
“이 놈은 도대체 무슨 벌레이기에 이다지도 당돌한가?”
“예. 그것은 사마귀란 놈인데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 설 줄은 모르지요. 또 제 힘은 요량하지 못하고 무조건 대드는 놈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莊公은 “그래? 그 참 묘한 놈이로구나. 일개 微物(미물)이…. 만약 이 놈이 군사였다면 천하에 둘도 없는 勇士(용사)가 될 텐데…”라면서 수레를 뒤로 물려 일부러 사마귀를 피해갔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가 莊子(장자)에도 나온다. 蔣閭면(장려면)이란 사람이 季徹(계철)을 만나 말했다.
“글쎄 말이야, 魯(노)나라 왕이 나에게 가르침을 부탁하지 않았겠나. 사양할 수가 없어 몇 마디 해 주었지. 정치를 恭敬(공경)과 節儉(절검)의 자세로 하고 忠直(충직)한 인재를 뽑아 치우침 없이 대한다면 만백성이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이네.”
그러자 季徹은 비웃기라도 하듯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당신의 말은 왕의 德業(덕업)에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네. 마치 螳螂이 수레바퀴를 對敵(대적)하듯이 말이야.”
여기에서 螳螂拒轍은 ‘螳螂이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제 힘은 모르고 무조건 달려들기만 하는 無謀한 행위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밖에 螳螂之斧(당랑지부)도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螳螂의 도끼’라는 뜻인데 螳螂이 두 다리를 치켜든 모습이 마치 도끼를 든 것과 흡사하다 하여 나온 말이다.
그러나 螳螂의 두 다리는 벌레나 곤충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지 모르나 자신보다 더 큰 상대에게는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 螳螂之衛(당랑지위), 螳螂之力(당랑지력), 螳螂當車(당랑당거)도 같은 뜻이다.
荒-거칠 황 唐-당나라 당 蕪-번성할 무 野-들 야 邊-가장자리 변 稽-상고할 계
荒의 초초(초·草와 같음)는 풀, ‘Z’(황)은 ‘넘실대는 물’이다. 따라서 荒은 풀이 넘실대는 것, 곧 잡초가 우거진 것을 뜻한다. 그것은 경작할 수 없는 땅이므로 ‘거칠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荒蕪地(황무지), 荒凉(황량), 荒野(황야), 荒廢(황폐)가 있다.
그런데 물이 넘실대는 것은 호수나 바다처럼 넓고 큰물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서 荒은 ‘넓고 크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荒無地나 荒野라는 단어에서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
唐은 본디 庚과 口가 결합한 뒤 생략된 글자다. 여기서 庚은 ‘크다’, 口는 ‘입’, ‘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唐은 ‘큰’, 또는 ‘거창한 말’이라는 뜻이다. 쌀(米)로 빚었지만 쌀보다 더 큰 것이 糖(사탕 당), 흙(土)으로 높고 크게 만든 것이 塘(연못 당)이다.
곧 荒과 唐에는 모두 ‘크다’(big)는 뜻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荒唐의 본디 뜻은 ‘廣大無邊’(광대무변)이다. 지금말로 하면 거창한 스케일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荒唐에 나쁜 뜻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荒唐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莊子(장자)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보면 ‘荒唐’하기 그지없다.
북쪽 바다에 鯤(곤)이라고 하는 고기가 있는데 크기가 무려 수 천리에 달하고 이 놈이 둔갑하여 鵬(붕)이라는 새가 되면 날개 또한 수 천리나 되어 하늘을 덮는다. 또 楚(초)나라의 남쪽에는 신령스런 거북이가 살고 있는데 이 놈은 오 백년을 봄, 오 백년을 가을로 삼는다. 그 뿐인가. 어떤 고목은 만 팔천 년에 한번씩 잎이 돋고 낙엽이 진다.
그래서인가. 莊子 스스로도 자신의 말을 두고 ‘荒唐之言’(황당지언·황당한 말)이라고 했다. 물론 ‘거창한 스케일을 가진 말’이라는 뜻으로 나쁜 뜻은 전혀 없다. 스스로를 나쁘게 말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荒唐했다. 도대체 그런 사물이 있을 법이나 한가. 이 얼마나 虛荒(허황)된 말인가. 그래서 荒唐은 다른 뜻으로 曲解(?)되어 ‘엉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다 ‘아무 근거도 없는 엉터리’라는 뜻에서 荒唐無稽(황당무계)라는 말도 생겼다.
사실 엄밀히 볼 때 荒唐은 나쁜 뜻이 아니다. 거창하고 스케일이 큰 말이 왜 나쁜가. 그것보다는 근거 없이 크기만 한 荒唐無稽가 곤란하지 않을까.
革-가죽 혁 究-연구할 구 恐-두려울 공 宰-다스릴 재 剋-이길 극 暮-저물 모
‘無識(무식)하면 勇敢(용감)하다’는 말이 있지만 모르면 무섭기도 한 법이다.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그 實體(실체)에 대해 아직 속시원하게 究明(구명)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1세기인 지금, 한껏 과학기술을 뽐내고 있지만 어디 인간이 아는 게 얼마나 되는가.
人智(인지)가 아직 깨이지 않았던 先人(선인)들은 ‘통’ 몰랐다. 특히 해 뜨고 비바람 불고 바닷물이 넘치는 따위의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으니 그 恐怖(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신했던 것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主宰(주재)하는 이가 바로 ‘하늘’이라는 것이다.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가 하늘이었음은 물론이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하늘은 인간과 똑 같은 五感(오감)을 가지고 있다. 인간처럼 보고 웃고 화내고….
그 하늘이 우리 인간도 主宰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의 의지, 즉 天命을 아들인 天子를 통해 간접통치의 방식으로 인간을 다스렸는데 잘 다스리면 기분이 좋지만 못된 짓이나 하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으면 하늘도 화가 나서 天命을 거두어들이게 된다. 물론 사전에 경고의 徵兆(징조)를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地震(지진)이니 日蝕(일식) 따위의 天災地變(천재지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機微(기미)를 재빨리 눈치 채고 하늘의 命을 뒤집어 놓는 것이 ‘革命’이다.
짐승의 ‘가죽’을 뜻하는 한자는 몇 개가 있다. 皮(피)는 짐승을 잡아 벗겨낸 직후의 가죽으로 무겁고 끈적거려 입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여러 번 삶고 무두질을 거치면 부드러워지는데 이것이 革이다. 사실 革자는 짐승의 가죽을 나뭇가지에 펼쳐 말리는 모습에서 따온 글자다.
革이 되면 종전 皮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은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가죽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革은 ‘면모를 완전히 바꾸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革新(혁신), 改革(개혁) 등이 그렇다.
또한 革은 周易(주역)에 보이는 卦(괘)의 이름이기도 하다. 연못 속에 불덩이가 앉아있는 형상인데 물과 불은 서로 相剋(상극), 무엇인가 뒤집어 놓아야 할 괘가 革인 것이다. 그렇다면 革命은 ‘天命을 완전히 뜯어 고친다’는 뜻이 아닌가.
03/12/21 <656>駟 不 及 舌 (사불급설) △
駟-사마수레 사 朽-썩을 후 愼-삼갈 신 懸-매달 현 湯-물 끓을 탕 확-가마솥 확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을 신중히 하는 것은 美德(미덕)이었다. 특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儒敎倫理(유교윤리)가 지배했던 국가에서는 사람의 ‘말’에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했다. 죽음에 대해 來世(내세)를 제시했던 불교와는 달리 肉身(육신)은 죽되 정신은 영원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三不朽(삼불후)로 제시하면서 그 중 하나로 立言(입언·훌륭한 말을 남김)을 꼽았는가 하면 말 그 자체가 人格을 대신한다고 여겼다. ‘言如其人(언여기인·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말이 중요했으므로 愼重(신중)에 愼重을 기해야 했으니 이른바 ‘愼言’(신언)이 그것으로 君子의 필수요건이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내 뱉는 말을 ‘放言’(방언)이라 했으니 市井雜輩(시정잡배)의 소행으로 치부했다. 이처럼 三寸舌(삼촌설)을 여하히 놀렸느냐에 따라 人格을 달리 평가받았으며 심지어는 一身(일신)의 榮達(영달)과 亡身(망신)이 극명하게 갈리기까지 했으니 우리는 그런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옛날 전국시대 蘇秦(소진)과 張儀(장의)가 懸河(현하)의 達辯(달변)으로 제후를 요리해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殷(은)나라 比干(비간)은 혀를 함부로 놀려 심장에 구멍이 일곱 개나 뚫려야 했고 韓生(한생)은 湯확(탕확·사람을 삶아 죽이기 위해 만든 커다간 가마솥)의 형벌을 받았으며 司馬遷(사마천)은 去勢(거세)의 恥辱(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과연 선인들은 말의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晉(진)의 傅玄(부현·217∼278)은 ‘病從口入, 禍從口出(병종구입, 화종구출-病은 입으로 들어오고 禍는 입에서 나온다)’이라고 했으며 五代 때의 馮道(풍도·882∼954)는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입은 禍의 大門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駟不及舌’도 비슷한 뜻이다. 駟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다. 지금말로 하면 배기량 3000cc가 넘는 대형차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네 마리가 끄는, 빠른 마차로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서 해야 한다’는 경구다. 論語(논어)에 보인다.
말을 잘못해 당하는 화를 舌禍(설화)라 하거니와 말은 愼重하게 해야 할 것이며 특히 지도층에 있는 인사라면 자신의 말이 지니고 있는 영향력과 그에 따라 초래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깊은 생각이 따라야 할 줄 안다.
03/12/18 <655>緣 木 求 魚 (연목구어) △
緣-인연 연 覇-우두머리 패 舊-예 구 殃-재앙 앙 戮-죽일 륙 說-달랠 세
戰國時代(전국시대)라면 諸侯(제후)들이 하나같이 천하의 爭覇(쟁패)에 혈안이 되어 있던 때다. 그 같은 현상을 누구보다도 개탄한 자는 孟子(맹자)였다. 그의 정치이론은 오직 하나, 전쟁을 하지 않고 仁義(인의)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이른바 王道政治(왕도정치)로 孔子(공자)를 비롯한 儒家(유가)들의 理想(이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諸侯들에게 그것은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齊宣王(제선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孟子를 만나자 대뜸 春秋時代(춘추시대) 齊桓公(제환공)과 晉文公(진문공)에 대해 듣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王道같은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覇道에 대해서나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孟子는 은근히 비꼬면서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왕께서는 지금 영토를 확장해 소위 覇業(패업)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舊態依然(구태의연)한 그런 방법(즉 武力動員)을 가지고 천하를 손안에 넣겠다는 발상은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齊宣王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그게 그렇게 터무니없다는 이야기요?”
“터무니가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야 혹 못 잡더라도 後患(후환)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같은 방법으로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뒤에 반드시 災殃(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결국 孟子의 말은 仁義(인의)를 바탕으로 하는 王道政治를 행할 것이지 쓸데없이 武力이나 사용하여 백성을 괴롭히고 殺戮(살륙)을 일삼는 그런 어리석은 행위는 그만 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武力으로 覇業을 追求(추구)하는 것은 마치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짓이나 진배없는, ‘전혀 무의미한’ 짓이기 때문이다.
孟子의 주장을 뜯어보면 틀리는 구석은 없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황을 외면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엄밀히 말해 緣木求魚의 愚(우)를 범했던 것은 宣王이 아니라 孟子 자신이 아닐까. 당시 覇業追求에 血眼이 돼 있던 諸侯들에게 한가롭게 王道政治나 강조했으니 말이다. 孟子나 孔子의 遊說(유세)가 실패로 끝난 것도 다 일리가 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당시 諸侯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론은 富國强兵策(부국강병책)이었다. 이 점을 간파한 法家(법가)들은 열심히 秦(진)나라를 섬겨 마침내 패자로 만들고 만다. 孟子의 ‘緣木求魚’論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監-볼 감 獄-감옥 옥 龜-거북 귀 醜-추할 추 牢-우리 뢰 炙-구운고기 자
東西洋(동서양)을 막론하고 초기의 거울은 ‘물거울’이었다. 곧 연못이나 호수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후에 오면 세숫대야 같이 커다란 그릇에 물을 담아 누워서 얼굴을 바짝 갖다대고 쳐다보았는데 그것을 뜻하는 글자가 監이다. 곧 누워서(臥) 그릇(皿)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監은 ‘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監督(감독) 監査(감사) 監視(감시) 舍監(사감)이 있다.
그러나 監으로도 불편하여 후에 청동으로(金) 만든 것이 나왔는데 그것을 鑑(거울 감)이라고 했다. 龜鑑(귀감)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龜(거북이)로는 인간의 吉凶(길흉)을, 鑑으로는 美醜(미추)를 판별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둘 다 ‘바로 잡다’는 뜻이 있다. 지금과 같은 거울이 등장한 것은 元(원)나라 때 페르시아로부터 유리가 전래되면서부터라고 한다.
獄은 두 마리의 개(견, 犬)와 말(言)이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두 마리의 개는 원고와 피고 두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개라는 놈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싸운다. 따라서 여기서는 원고와 피고 두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변호하기 위해 마치 개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듯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는 감옥에 갇히게 되므로 獄은 ‘가두다’ 또는 ‘가두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獄死(옥사) 獄中(옥중) 地獄(지옥) 脫獄(탈옥)이 있다.
따라서 監獄이라면 ‘감금하여 우리에 가두는 곳’이다. 중국 최초의 감옥은 舜(순)임금 때의 법무장관이었던 (고,호)陶(고요)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4000년 전의 일이다. 그 뒤 시대에 따라 명칭이 달랐는데 夏(하)의 夏宮(하궁), 殷(은)의 유里(유리). X(어), 周의 (원,환)土(환토), 秦의 囹圄(영어)로 불리다가 漢(한)나라 때에 와서 비로소 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北朝(북조) 때에는 땅을 파서 監獄을 만들었으므로 地牢(지뢰)라고 했으며 明나라 때에는 監이라고 하여 현재의 監獄이라는 명칭이 나오게 되었다.
옛날 秦始皇(진시황) 때에는 暴政(폭정)으로 監獄이 죄수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衣塞路, 囹圄若市’(자의색로, 영어약시)-길에는 죄수로 넘쳤고 감옥은 시장 같다. 물론 監獄과 죄수는 적을수록 좋다. 갑자기 ‘監獄’이란 말이 膾炙(회자)되고 있다.
03/12/14 <653>橫 領(횡령)
橫-가로 횡 領-차지할 령 縱-새로 종 竪-세울 수 厄-재앙 액 財-재물 재
橫은 참 재미있는 한자다. 곧 木(목)과 黃(황)의 결합으로 옛날 돼지 따위의 가축이 집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문이나 사립문에 걸쳐두었던 나무(木)막대기를 말했다. 여기서 黃은 나무의 색깔을 뜻한다. 나무가 오래되면 누런 색깔을 띠게 된다. 그러니까 橫은 ‘사립문에 걸쳐놓은 누런 나무’가 되겠다. 가로로 걸쳐져 있었으므로 후에는 ‘가로’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세로는 縱(종)이다.
방위에서 볼 때 東西(동서)가 橫이라면 南北(남북)은 縱(종)이다. 곧 橫이 수평, 평등을 뜻한다면 縱은 수직, 上下(상하)의 관계를 뜻한다고 하겠다. 지금이야 橫的(횡적)인 관계가 더 중시되겠지만 엄격한 신분질서를 유지해야 했던 옛날에는 縱的(종적)인 관계가 더욱 중시됐다. 君臣(군신)간의 관계를 南北(남북)으로 표시했던 것이 그 예다.
반면에 橫은 탈법, 무질서, 반역을 의미했다. 따라서 橫으로 이루어진 단어치고 좋은 뜻을 가진 것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장기나 바둑에서 불법으로 잘못 둔 수를 橫手(횡수), 불법으로 마구 포악하게 구는 것을 橫暴(횡포), 도리에 맞지도 않는 말을 제멋대로 지껄이는 것을 橫說(횡설) 또는 橫說竪說(횡설수설)이라고 한다.
이처럼 橫이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뜻했던 만큼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며 그만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여기서 橫은 ‘갑자기’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죽는 것을 橫死(횡사), 갑자기 당하는 재앙을 橫厄(횡액), 갑자기 재물을 손에 쥐는 것을 橫財(횡재)라고 한다. 또 橫行(횡행)이라면 게처럼 ‘옆으로 걷는다’는 뜻으로 본디 들을 거니는 사람이 논둑이나 밭둑을 무시하고 마구 논밭으로 걷는 것을 뜻했다. 그것 역시 질서를 지키지 않는,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한편 領은 머리를 뜻하는 ‘頁’(혈)이 있으므로 ‘목’, ‘옷깃’이라는 뜻이 있음을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옷을 집을 때는 옷깃을 잡으며 소나 개 같은 동물을 끌 때도 목을 잡아당긴다. 따라서 領은 ‘다스리다’, ‘받다’는 뜻도 가지게 된다.
따라서 橫領이라면 ‘가로채는 것’이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했으므로 좋은 뜻일 리 없다. 요즘 불법 大選資金(대선자금) 때문에 정계와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다면 배달사고다. 누군가가 중간에서 橫領했음에 틀림없다.
03/12/11 <652>漁 父 之 利 (어부지리) △
漁-고기잡을 어 戰-싸울 전 眈-노릴 탐 饑-굶주릴 기 塗-진흙 도 爭-다툴 쟁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諸侯(제후)간의 쟁패는 유명하다. 弱肉强食(약육강식)의 결과 본디 140여개 국이 일곱 개의 강대국으로 줄어들었으니 戰國七雄(전국칠웅)이 그들이다. 그 중 중국의 동북방에 있던 燕(연)나라는 최약소국으로 서남쪽으로는 趙(조), 남쪽으로는 齊(제)와 각각 인접해 있었다. 물론 최대 강국인 秦(진)도 서남쪽에서 虎視眈眈(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한번은 燕나라에 饑饉(기근)이 든 틈을 타 趙나라가 쳐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燕王은 說客(세객) 蘇代(소대)를 시켜 趙王을 설득하도록 했다. 蘇代는 合從策(합종책)으로 유명한 蘇秦(소진)의 동생이다. 그 역시 형만큼은 못했지만 뛰어난 辯術(변술)을 가지고 있었다.
蘇代는 趙의 惠文王(혜문왕)을 만나 말했다.
“제가 오늘 貴國(귀국)에 들어올 때 易水(역수)를 지나오다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냇가에 조개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햇빛을 쐬고 있는데 갑자기 황새가 나타나 조개를 덥석 쪼았지요. 그러자 조개는 기겁을 하고는 그만 입을 오므려 황새의 부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한참 있다가 황새가 말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죽고 말걸.’ 그러자 조개가 대꾸했지요. ‘천만의 말씀. 내가 오늘도 놓지 않고 내일도 놓지 않으면 너야말로 죽고 말겠지.’ 이렇듯 둘은 좀처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어부가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두 놈을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燕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燕이 조개라면 趙는 황새입니다. 두 나라가 쓸 데 없이 전쟁을 일으켜 싸우면 백성은 塗炭(도탄)에 빠지게 될 것이고 국고는 비어 저 강대한 秦(진)이 漁父노릇을 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蘇代의 말을 들은 惠文王은 느끼는 바가 많았다. 조그만 燕을 치다 나라를 망하게 하느니 차라리 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燕을 치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본문에 등장하는 조개와 황새는 각각 蚌(조개 방)과 鷸(황새 휼)이다. 그래서 蚌鷸之爭(방휼지쟁)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싸우는 당사자(燕과 趙)를 말함이고 漁父之利라면 이익을 취하는 자(秦)를 뜻한다. 물론 뜻은 같다고 하겠다. 이처럼 서로 다투는 틈을 타서 제삼자가 이익을 취할 때 漁父之利, 또는 蚌鷸之爭이라고 한다.
社-사직 사 會-모일 회 耕-밭갈 경 豊-풍년 풍 祭-제사 제 結-맺을 결
흔히 인간을 두고 ‘社會的(사회적) 動物(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혼자서는 살수가 없고 끼리끼리 모여 집단을 형성해 서로 협력하면서 共同生活(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따라서 社會의 辭典(사전)적인 의미는 ‘共同生活을 營爲(영위)하는 사람들의 集團(집단)’이다. 자연히 ‘社會’라는 말속에는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이라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먹는 것이었다. 특히 農耕民族(농경민족)이었던 우리나 중국에서 먹는 것을 해결해주는 農事(농사)는 王政(왕정)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과제였다. 자연히 穀食(곡식)이 중시되었고 그 穀食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땅의 役割(역할)이 또한 중요했으니 朝廷(조정)에서 이 둘을 祭祀(제사)지냈던 곳이 바로 社稷壇(사직단)이다. 곧 社가 땅 귀신이요 稷이 곡식 신을 뜻한다 함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옛날 중국의 민간에서는 땅 귀신을 별도로 섬겼는데 일정한 날을 정하여 社에게 祭祀(제사)를 올렸다. 그 제삿날을 社日(사일)이라고 했는데 일년에 春分(춘분)과 秋分(추분)이 끼는 즈음에 두 번에 걸쳐 祭祀를 올렸다. 즉 立春이 지나고 다섯 번째 돌아오는 戊日(무일)에 올리는 祭祀를 春社, 立秋가 지나고 다섯 번째의 戊日에 올리는 祭祀를 秋社라고 했다.
春社日에는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빌었으며 秋社日에는 그 해의 豊年을 감사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社日에는 술을 정성스레 빚어 바쳤는데 그것을 社日酒(사일주), 또는 社酒라고 했다.
社日이 되면 男女老少(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社祠(사사)에 모여 한 바탕 어울렸다.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으므로 시끌벅적하고 요란했다. 그래서 社는 하나의 단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結社(결사)가 그것이다. 한편 會는 ‘모임’을 뜻한다. 忘年會(망년회)니 記念會(기념회), 會食(회식), 司會(사회) 등이 그것이다.
社日은 확실히 동네에서 드물게 보는 모임(會)이었다. 그래서 ‘社會’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社會’란 본디 ‘땅 귀신을 祭祀지내던 모임’에서 유래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들 땅 귀신을 祭祀지낸다고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모여들었으므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모임을 이루게 되었다면 이것 역시 또 하나의 社會가 아닌가.
03/12/07 <650>聲 東 擊 西(성동격서) △
聲-소리 성 擊-칠 격 處-처할 처 勝-이길 승 陣-진칠 진 欺-속일 기
사람이 處世(처세)를 하는 데 있어 正直(정직)해야 하는 것은 기본 德目(덕목)이다. 그러나 적어도 스포츠나 戰爭(전쟁)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패하기 십상이다. 勝敗(승패)만이 존재하는 상황이므로 때에 따라 얼마든지 正直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각종 운동경기다. 특히 球技種目(구기종목)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른바 ‘페인트 동작’이 그것이다. 헛발질이라든지 아니면 이상한 몸동작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다. 하기야 나의 공격 방향과 목표를 알려주고 차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도 없지 않겠는가.
옛날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의 襄公(양공)은 참으로 인자한(?) 諸侯(제후)였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도 상대방이 布陣(포진)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쳤다. 楚(초)나라와 싸울 때였다. 楚軍(초군)이 泓水(홍수)를 건널 때 宰相(재상) 目夷(목이)가 말했다.
“절호의 찬스입니다. 빨리 쳐야 합니다.”
그러나 襄公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미쳐 준비도 하기 전에 先手(선수)를 치는 것은 君子(군자)답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大敗(대패)해 자신도 戰死(전사)하고 말았다. 유명한 宋襄之仁(송양지인)의 고사다. ‘쓸데없는 寬容(관용)’을 뜻한다.
과연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의 兵法家(병법가) 孫子(손자)는 자신이 쓴 孫子兵法에서 군사작전의 기본 성격을 ‘詭’(궤·속임)에 있다고 했다. 이른바 欺瞞作戰(기만작전)이 그것이다.
그런데 欺瞞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誤認(오인)을 誘導(유도)하여 戰力(전력)을 손실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赤壁大戰(적벽대전) 때 周瑜(주유)의 연합군이 曹操(조조)의 백만 대군을 속였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하나는 상대방의 注意力(주의력)을 딴 곳에 쏠리게 한 다음 뒤통수를 치는 방법이다. 이른 바 陽動作戰(양동작전)이다. 아군의 주공격 지점이나 방향을 적이 알지 못하도록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엉뚱한 곳에서 작전을 전개하는 것이다. 곧 그곳이 주 공격목표인 것처럼 속여 적의 군사력이 집중되면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 火力(화력)을 집중시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다. 그것을 한자로는 聲東擊西(성동격서)라고 한다. 직역하면 동쪽에서 왁자지껄 소리를 내어 상대방의 注意를 집중시킨 다음 별안간 서쪽을 치는 것이다.
露-이슬 로 骨-뼈 골 呈-드릴 정 假-거짓 가 飾-꾸밀 식 悚-두려울 송
기상현상을 뜻하는 한자는 모두 비를 뜻하는 ‘雨’(우)를 部首(부수)로 하고 있다. 농경국가에서는 비가 가장 중요한 기상현상이었기 때문이다. 露도 그렇다. 雨(우)와 路(로)의 결합으로 길 위에 비가 와 있는 것을 뜻한다. 낮에 왕성했던 수증기가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식어서 응집된 것이 ‘이슬’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그런 자연법칙을 알 턱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밤새 하늘이 비를 조금 내려준 것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굳이 길을 따온 것은 이슬이 길을 걸을 때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길 위에 내린 이슬이건 풀잎 위에 내린 이슬이건 영롱하기 그지없다. 함초롬히 맺혀 있는 모습은 있는 그대로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露는 ‘훤히 드러내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露宿(노숙), 露天(노천), 露出(노출), 露呈(노정), 暴露(폭로) 등이 그렇다.
骨은 뼈의 모습에서 따온 글자다. 한자에서 뼈를 뜻하는 글자에는 (대,알)(알)도 있다. 칼(도)로 뼈((대,알))를 발라내는 것이 列(열)자다. 곧 ‘分解’(분해)의 뜻이 있다. 그런데 (대,알)은 살점 하나 없는 앙상한 뼈를 뜻하고 骨은 살이 조금 붙어 있는 뼈를 말한다.
露骨이라면 ‘뼈가 훤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살점을 발라내고 난 뼈는 희게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 뼈를 훤히 드러냈으니 얼마나 明明白白(명명백백)하겠는가. 따라서 露骨은 ‘假飾(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露骨의 경우는 흔히 있다. 아프리카의 초원지대에서는 弱肉强食(약육강식)이 茶飯事(다반사)로 벌어지곤 한다. 얼룩말이 사자의 밥이 되어 며칠이 지나면 흰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 露骨인 것이다.
그러나 본디 露骨은 사람의 뼈가 드러난 것에서 나온 말이다.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나면 벌판에는 시체가 즐비하다. 아무도 거둬들이는 사람 없이 내버려두면 한 여름의 暴炎(폭염)에 쉬이 부패하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연 뼈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露骨이다. 생각만 해도 毛骨(모골)이 悚然(송연)해지는 처참한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디 露骨은 그처럼 끔찍한 경우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좋은 뜻은 아니다. 할 말 다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수는 없다. 사람은 뭔가 좀 참고 절제하면서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03/12/02 <648>窮 鼠 齧 猫\ (궁서설묘) △
窮-궁할 궁 鼠-쥐 서 설-깨물 설 猫-고양이 묘 塗-진흙 도 蹶-일어날 궐
漢武帝(한무제)는 匈奴(흉노)정벌에 따른 재정위기를 타개하고 또 재벌과 지방 豪族(호족)의 세력을 꺾기 위해 획기적인 경제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소금과 철의 생산, 화폐의 주조 등을 국가 專賣事業(전매사업)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朝廷(조정)의 권력이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재정도 넉넉해 졌고 백성들도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막대한 利權(이권)을 빼앗긴 재벌이나 지방 豪族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 뒤 기원전 81년, 昭帝(소제)는 輿論(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의 지식인 60여명을 불러 중앙 공무원과 이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중국 최초의 공개 討論會(토론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때의 토론을 대화형식으로 엮은 것이 西漢 桓寬(환관)의 鹽鐵論(염철론)이다.
먼저 공무원을 대표하는 御史大夫(어사대부·현재의 검찰총장) 桑弘羊(상홍양)및 고관들은 다들 현재의 국가 專賣制度(전매제도)를 적극 찬성했지만 지식인들은 격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토론은 갈수록 격렬해져 국가의 재정문제를 넘어 통치방법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桑弘羊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嚴法(엄법)을 통한 法治主義(법치주의)를, 지식인들은 禮治(예치)를 주장했다. 그러니까 전자가 法家(법가)에 속한다면 후자들은 孔孟(공맹)의 儒家(유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桑弘羊 측이 과거 역사적 사례를 들어 엄한 法이야말로 최고의 통치방법이라고 역설하자 이에 맞서 지식인들은 秦始皇(진시황)의 예를 들었다. 곧 당시 엄하기로 이름난 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백성들은 塗炭(도탄)에 빠져야 했으며 마침내 嚴法을 이기지 못해 도처에서 蹶起(궐기)했던 점을 들었다. 결국 이 때문에 陳勝(진승)과 吳廣(오광)의 반란이 일어나 秦나라는 불과 15년 만에 망했다고 했다. 곧 백성을 엄한 法으로 혹독하게 내몰기만 하면 결국에는 저항에 부딪쳐 社稷(사직)은 망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보다는 仁義(인의)에 의한 통치가 더 낫다는 것이었다.
지식인들은 그것을 고양이와 쥐의 관계에 比喩(비유)했다. 쥐는 고양이만 보면 무서운 나머지 오금을 못 펴지만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면 고양이를 물 수도 있다는 것이다. 窮鼠설猫는 이를 뜻하는 말이다. 桓寬의 鹽鐵論 본문에는 ‘窮鼠설(리,이)’(궁서설리)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리,이)는 ‘살쾡이’를 뜻한다.
痼-고질 고 疾-병 질 壽-목숨 수 황-명치끝 황 腹-배 복 驕-교만할 교
長壽(장수)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단지 오래 산다고 長壽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長壽란 健康(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다년간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오래 산 들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甲骨文을 보면 ‘(녁,역)’(녁)은 환자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다음 세운 글자다. 전혀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3600년 동안 한자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100년을 못사는 우리 인간도 태어난 이래로 모습이 많이도 바뀌지 않는가?
따라서 (녁,역)은 ‘질병’을 뜻하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녁,역)’이 들어있는 글자는 모두가 질병과 관계가 있다. 病(병), 疲(피), 疫(역), 痛(통), 痲(마), 療(료)등 매우 많다. 痼는 (녁,역)과 固의 결합이므로 병((녁,역))이 나도 단단히(固) 난 병을 말한다. 그래서 뜻은 ‘고질병 고’다. 쉽게 낫지 않는 병을 가리킨다.
한편 疾은 (녁,역)과 矢(시)의 결합으로 矢는 화살을 뜻한다. 옛날 화살은 제일 빠른 존재였다. 그래서 여기서는 ‘빠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疾은 ‘화살에 맞은 병’이 아니라 ‘빠른 병’ 즉 설사나 복통, 식중독 등과 같은 급성 질병을 뜻한다. 그리 우려할 만한 병은 아닌 셈이다. 후에 疾자체가 ‘빠르다’는 뜻을 가지게 되어 疾走(질주)니 疾風(질풍)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痼疾이라면 쉽게 고쳐질 수 없는 병이 된다. 곧 불치병으로서 지금의 암이나 당뇨병 따위가 되겠다. 이들에 듣는 특효약이 없듯이 옛날에도 痼疾에 걸리면 살아날 수가 없었다.
옛날의 대표적인 痼疾은 膏황(고황)에 걸리는 병이다. 膏는 가슴아래의 명치부분이며 황은 가슴과 腹部(복부)사이에 있는 작고 얇은 막으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심장이 있어 잘못 건드렸다가는 생명이 위독하다. 곧 膏나 황은 急所(급소)인 셈이다. 이곳에 병이 들면 名醫(명의)로 이름난 扁鵲(편작)도 어찌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에 의하면 膏황 외에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痼疾’이 더 있다고 했다.
첫째. 驕恣不論於理(교자불론어리)-교만하고 방자하여 도리를 모르는 자.
둘째. 輕身重財(경신중재)-몸을 가벼이 하고 재물을 중시하는 자.
셋째. 衣食不能適(의식불능적)-먹고 입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
痼疾이 肉身(육신)의 질병만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혹 또 다른 痼疾을 앓고 있지나 않은 지 한번 吟味(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03/11/27 <364>捲 土 重 來(권토중래) △
捲-말 권 爭-다툴 쟁 網-그물 망 拔-뽑을 발 蓋-덮을 개 恥-부끄러울 치
亂世(난세)가 英雄을 부르는 법. 기원전 206년, 秦(진)이 망하자 천하는 無主空山(무주공산)이 되었다. 이 때 두 英雄豪傑(영웅호걸)이 나타나 천하를 다투었으니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之爭(초한지쟁)이 그것이다. 한 편의 장엄한 大敍事劇(대서사극)으로 일컬어질 만큼 감동적인 장면도 많은데 그 중 四面楚歌(사면초가)는 가히 壓卷(압권)이라 하겠다. 쫓기던 項羽는 垓下(해하·현 安徽省 靈壁縣 東南)에서 大敗(대패)하고 만다(기원전 202년).
가까스로 包圍網(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나왔을 때는 고작 28명의 부하들만 남았다. 패잔병을 이끌고 烏江(오강·현 安徽省 和縣)에 이르자 亭長(정장·지금의 면장에 해당)이 배를 저어 와 말했다.
“빨리 타십시오. 江東 땅이 비록 작기는 하나 沃土(옥토)가 천리요 백성이 수십 만으로 다시금 覇業(패업)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項羽는 그의 好意(호의)를 거절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거늘 강을 건넌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리고 옛날 江東의 子弟(자제) 8000명으로 이 강을 건넜는데 나 혼자 살아 돌아간다면 무슨 면목으로 그들의 부모를 뵌단 말인가.”
하고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 자결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31세 때의 일이다. 한때 ‘力拔山, 氣蓋世(역발산 기개세·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천하를 뒤덮을 만 함)“를 자랑하던 項羽였지만 최후의 모습은 이처럼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 뒤 1000년이 지나 唐(당)의 시인 杜牧(두목·803-852)이 烏江을 찾았다. 천하 대장군 項羽의 비참한 최후에 누군들 감회가 없겠는가. 그 역시 烏江의 亭子에 ‘題烏江亭’(제오강정·오강정을 노래함)이라는 시 한 수를 남겼다.
勝敗兵家不可期(승패병가불가기)-승패는 병가도 알 수 없는 법,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수치를 참는 자가 진정한 남아.
江東子弟多英俊(강동자제다영준)-강동의 자제 중엔 인걸이 많았거늘,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그 누가 알랴 권토중래를.
項羽를 同情(동정)해서일까. 杜牧의 눈에는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이 31세의 아까운 나이로 비참한 最後(최후)를 맞이했다는데 대해 애석함을 금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捲土重來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실패한 사람이 새로운 각오로 또 다시 세력을 만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脈-맥 맥 絡-이을 락 搏-두드릴 박 亂-어지러울 난 籠-새장 롱 條-조목 조
‘濫觴’(남상)은 ‘술잔에 넘치는 정도의 물’로 사물의 始初(시초)를 뜻한다. 큰 강도 발원지는 그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한 두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 그것이 여러 지류를 합쳐 커다란 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그렇게 큰 강도 흐르면서 때로 여러 갈래의 지류를 형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을 뜻하는 글자가 ‘S’(배)다. 언뜻 보아도 하나의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흐르고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S’의 뜻은 물의 ‘갈래’가 되겠다. 참고로 여기에다 ‘물’을 뜻하는 수(水)자를 덧붙여 ‘물줄기’라는 뜻을 확실히 한 것이 바로 派(파)자다.
그렇다면 한자 脈은 사람의 몸(月·肉)에 ‘갈래’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脈의 본 뜻은 ‘핏줄’ 곧 血管(혈관)이다. 脈搏(맥박), 動脈(동맥), 診脈(진맥)이 있다.
그런데 ‘갈래’가 나 있는 것으로 핏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에 갈래가 나 있으면 山脈(산맥)이 되고 석탄 따위의 지하자원에 갈래가 나 있으면 鑛脈(광맥)이 되며 金(금)이라면 金脈이 된다. 또 사람으로 얽혀진 갈래가 있다면 이번에는 人脈(인맥)이 된다. 물론 때로 갈래가 어지럽게 마구 얽혀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亂脈(난맥)이다.
絡은 (멱,사)와 各의 결합이다. 곧 실((멱,사))로 제각기(各) 흩어져 있는 물건을 묶어 놓은 것을 뜻한다. 따라서 絡은 ‘묶다’, ‘연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연결하여 얽어매는 것이 聯絡(연락), 五臟六腑(오장육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이 經絡(경락)이다. 連絡不絶(연락부절· 왕래가 잦아 끊이지 않음)이란 말도 있다.
또 새장 속에 가두어 놓고 얽어매는 것이 籠絡(농락)인데 拘束(구속)이나 制限(제한)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籠絡당하게 되면 꼼짝 달싹하지 못한다. 반대로 籠絡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다. 그래서 籠絡은 ‘제 맘대로 주무르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대체로 천자가 얄팍한 기교로 신하나 백성을 속이고 놀리는 것을 말했다. 물론 좋은 뜻은 아니다.
脈絡이라면 본디 핏줄이 끊이지 않고 연결돼 있는 것을 뜻했는데 후에는 사물의 일관된 條理(조리)나 理致(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고구마를 캘 때 줄기를 더듬어가다 보면 여러 개의 뿌리와 만나게 되는 것처럼 脈絡을 더듬다 보면 결국에는 진상을 찾게 될 것이다.
03/11/23 一 罰 百 戒 일 벌 백 계 △
罰-벌줄 벌 戒-경계할 계 逸-숨을 일 聘-부를 빙 寵-사랑할 총 遇-대접할 우
孫子(손자·본명 孫武)는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兵法家(병법가)였다. 그가 지은 孫子兵法(손자병법)은 지금까지도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고 있다.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逸話(일화)가 전해져 온다. 吳王(오왕) 闔閭(합려)는 그의 병법을 읽고 무릎을 쳤다. 하지만 實戰(실전)에도 능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招聘(초빙)했다.
“그대의 병법은 다 읽어보았소. 어디 실제로 군대를 훈련시켜 보일 수 있겠소?”
“좋습니다.”
“여자라도 괜찮을지….”
“물론입니다.”
闔閭가 宮女(궁녀) 180명을 불러내자 孫子는 그들을 90명씩 두 편으로 나누고는 각각 闔閭가 가장 寵愛(총애)하는 宮女를 隊長(대장)으로 삼은 다음 전투지시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그러나 손자가 막상 명령을 내리자 다들 키득거리고 웃기만 할 뿐 움직이지를 않았다.
“軍令(군령)이 분명치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장수의 책임이다.”
하고는 다시 큰 소리로 설명해 준 다음 命令을 내렸다. 그러나 궁녀들은 이번에도 웃기만 할 뿐이었다. 화가 난 孫子가 말했다.
“軍令이 분명한데도 듣지 않는 것은 隊長의 죄다.”
하고는 칼을 뽑아 두 명의 寵嬉(총희)를 목베려고 했다. 이 때 그의 훈련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闔閭가 황급히 전령을 보내어 만류해왔다.
“과연 장군의 用兵術(용병술)은 뛰어난 점이 있소. 하지만 과인에게 두 寵嬉가 없다면 나에게는 낙이 없소. 그러니 그들을 용서해 주구려.”
하지만 孫子는 물러서지 않았다.
“신은 이미 임금의 명을 받고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에 있을 때는 때로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두 宮女의 목을 베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 대장을 임명하여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마치 手足(수족)처럼 움직였다. 闔閭는 몇 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눕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절묘한 用兵術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 마침내 그를 大將軍(대장군)에 임명하여 전군의 지휘를 맡겼다.
이에 孫子는 闔閭의 知遇(지우)에 보답이라도 하듯 서쪽으로 楚(초)나라를 쳐서 크게 격파하고 북으로는 齊(제)와 晉(진)을 굴복시켜 위용을 천하에 떨쳤다. 一罰百戒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萬人(만인)으로 하여금 警戒(경계)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소위 공개처형이라는 것도 일종의 一罰百戒라고 할 수 있다.
尋-찾을 심 彙-모을 휘 衡-저울 형 覇-으뜸 패 幕-장막 막 稀-드물 희
語彙(어휘)가 발생하는 바탕은 文化(문화)다. 그래서 문화가 발달한 민족일수록 다양한 語彙가 존재한다. 또 語彙는 살아있는 有機體(유기체)처럼 生老病死(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발생하여 왕성하게 사용되다가 늙어 생명이 다하면 사라지고 만다. 물론 간혹 전혀 엉뚱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른바 ‘意味(의미)의 變質(변질)현상’이다.
語彙가 문화라는 바탕에서 발생하는 만큼 그 배경은 매우 다양하며 발생과정을 찾다보면 때로 흥미 있는 결과를 만날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尋常은 옛날 중국의 度量衡(도량형)에서 나온 말이다. 둘 다 길이를 뜻하는 단위였는데 尋이 8자이고 常은 尋의 두 곱이었으므로 16자를 뜻했다. 물론 그 자(尺)의 길이는 지금보다는 약간 짧았다.
8자든 16자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리 길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이 爭覇(쟁패)에 혈안이 된 나머지 ‘尋常의 땅’조차 다투었다고 한다. 한 평 남짓 되는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는 뜻으로 아주 작은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또 莊子(장자)는 배를 물에 띄우면 잘 나가지만 땅에서 밀면 평생을 밀어도 尋常만큼 나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래저래 尋常이라면 얼마 안 되는 길이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尋常은 극히 미미하여 보잘것없다는 뜻을 가진다.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는 뜻도 되겠다. 따라서 ‘尋常치가 않다’면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 되는 셈이다.
대시인 杜甫(두보)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酒量(주량)이 李太白(이태백)만큼이야 되지는 않았지만 亂世(난세)의 울분을 달랜다거나 詩興(시흥)을 돋우기 위해서 술을 많이 마셨다. 그래서 퇴근길이면 酒幕(주막)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돈도 없고 해서 옷 따위를 잡히고 술을 마셨더니 여기 저기 빚진 술값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까짓 술값이 대수는 아니지 않은가.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술값은 예사롭게 가는 곳마다 널려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에라! 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물었거늘.
유명한 ‘曲江’(곡강)이라는 詩다. ‘古稀’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술값 빚 정도는 尋常한 것으로 여겼던 杜甫였다. 요즘 정당의 불법선거자금 수사가 尋常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03/11/18 <642>勤 政 殿 (근정전) △
勤-부지런할 근 殿-대궐 전 奧-깊을 오 儉-검소할 걸 宵-밤 소 간-늦을 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름 석 자가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지니는 象徵性(상징성)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면 각별히 愼重(신중)하였으며 여러 요소를 고려하였다. 중국 宋의 蘇洵(소순)이라면 대문호 蘇東坡(소동파)의 아버지다. ‘名二子說’(명이자설)이라는 문장을 썼는데 아들 형제의 이름을 짓게 된 緣由(연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개인의 이름 석 자도 이러할 진데 하물며 국가의 기간시설, 그것도 전제군주시대라면 오죽할까. 이미 소개한 바 있는 景福宮(경복궁)이나 光化門(광화문)이 좋은 예로 그 深奧(심오)하고도 嚴肅(엄숙)한 의미에 숙연해질 정도다. 각기 ‘큰 福을 누리시라’는 백성들의 염원과 이에 화답이나 하듯 ‘햇볕처럼 坊坊曲曲(방방곡곡) 가리지 않고 敎化(교화)를 펴겠다’는 帝王(제왕)의 숭고한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점에서 이번에 重修(중수)를 마친 勤政殿도 마찬가지다. 본디 殿이란 궁중의 여러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을 일컫는 칭호다. 景福宮의 경우 思政殿(사정전)이니 康寧殿(강녕전), 交泰殿(교태전)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勤政殿은 조정의 공식 의식을 거행한다든가 문무백관의 朝會(조회)를 받는가 하면 외국사신을 접견했던 곳으로 景福宮의 正殿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건물이다 보니 이름 또한 범상치 아니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勤政이란 ‘政事에 부지런히 힘 쓴다’는 뜻으로 鄭道傳(정도전)이 命名(명명)했다 한다. 자고로 治家나 治國의 근본은 勤儉(근검)에 있다. 그래서 宵衣간食(소의간식·임금이 새벽 일찍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조정에 들어 해가 진 뒤에 저녁밥을 든다는 뜻으로 政事에 부지런함을 뜻함)은 제왕들이 가장 명심해야할 덕목이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염원을 담았다기 보다는 제왕 스스로가 경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본디 1395년(태조 4)에 창건된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됐던 것을 1867년(고종 4년)에 중건하였다. 그 뒤 일제에 의해 마구 유린되다 지난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2001년 1월부터 3년 10개월 동안 진행된 보수공사를 통해 말끔히 새 단장을 보게 되었으니 일그러진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세운 셈이다. 2년 전 이맘 때 쯤 낙성을 본 興禮門(흥례문)복원공사에 이어 두 번째 문화상의 쾌거다.